April 1, 2024
한국미술사에서는 신라 진흥왕 때 황룡사 벽화의 ‘노송도’를 그린 솔거를 필두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한국 화단은 유럽의 르네상스처럼 한국미술의 화려한 전성기를 맞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화에 뛰어났던 조선의 인물화가 윤두서 (1668 ∼ 1715), 풍속화에 뛰어났던 풍속화가 김홍도(1745~1806), 산수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던 관료화가 신윤복 (1758 ~ 1814)이 조선의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특유의 평화롭고 가식이 없는 휴머니티 와 순수한 자연의 미를 나타내려는 미술성향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생소하지만 조선시대의 이들 유명화가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화가가 또 있다. 그가 바로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 불려지는 최 북(1713 ~ 1786)이라는 조선 영조 때의 화가이다. 서양에서는 후기인상파 화가인 네덜란드 출신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스스로 면도칼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랐었고 결국은 권총자살을 하였다면 이보다 약 100년 전에 조선의 화가 최 북은 스스로 자신의 한쪽 눈을 송곳으로 찌르고(조선말기 화가 이한철이 최 북의 애꾸눈을 그린 초상화가 있다) 자살 소동까지 벌였으며 결국은 술에 취해 길에서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니 동서양에서 서로가 비견될 수 있는 두 명의 화가의 특별한 삶이다.
최 북의 생애와 관련해 현존하는 문헌 기록이나 사료가 부족한 편이라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생애를 고증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개략적으로 최 북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의 유년기나 청년기까지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삼십 대엔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 다니며 객지에서 지낼 때가 많았고, 이러한 기행과 산수화 사생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성립한 시기이다. 특히 1748년 통신사의 수행원 자격으로 한동안 일본에서 화가로서의 활동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오십대는 산수화 사생을 위해 단양, 금강산 등 국내의 명승지를 찾아 여행하였던 시기였으며 1749년에 그가 그린 ‘단구승유도’가 있다. 또 금강산을 그린 그림으로 1755년의 ‘금강산전도’와 ‘표훈사도’ 등이 있다.
최 북은 이 시기 조선의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실제의 경치를 그리는 진경산수화를 그리며 남종 문인화풍을 추구하였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화가로서 작품 제작에 열의를 보였다. 최 북의 말년은 그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작품이 많은 시기였다. 최 북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느 겨울날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서 잠들었는데 마침 폭설이 내려 그만 얼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눈이 찔린 ‘최북 초상화(애꾸눈).’ 이한철 작
우측 그림은 귀가 잘린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가 애꾸눈이 된 일화로는 어느 양반 벼슬아치가 중인 신분인 최 북을 불러 세워두고 강압적으로 그림을 부탁하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말을 듣던 최 북은 화를 참지 못해 옆에 놓여 있던 송곳을 들고 소리치며 자신의 한쪽 눈을 서슴없이 찔렀다. 눈에서 피가 철철 흐르자 그 벼슬아치는 놀라 황급히 도망갔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가 사실이라면 그의 행동을 볼 때 최 북을 ‘조선시대의 빈센트 반 고흐’라 해도 될 듯 하다. 반 고흐가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과격한 성격 과 최 북이 스스로 눈을 찌른 과격한 성격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을 모두가 선호하였는데 최 북은 실제의 경치를 그리는 진경산수화가로서 이를 비판하고 조선의 산수풍경을 그린 진경 산수화의 주요성을 설파하였고 대담한 조형양식의 화풍을 이루어 조선후기 미술사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후반 서양의 후기인상파그림의 특징인 현장그림을 그렸던 반 고흐의 예술성향과 대담하고 파격적인 화풍으로 훗날 야수파에 영향을 끼친 점이 서로가 닮았으며 이는 동서양에서 두 사람의 예술성향과 발자취가 비견될 수 있는 대목이다.
최 북은 붓으로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관’이라는 그의 호 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호탕한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호쾌한 기상은 그의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한 개인의 굽힐 줄 모르는 기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적 원동력이 될 수 있는데, 예술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 북은 세상의 평가나 관습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에 몰두하는 당당함이 있었기에 ‘풍설야귀인’ , ‘공산무인도’ 같은 당대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최북의 그림:
사진 왼쪽. ‘풍설야귀인’ 66cm x 43cm. 오른쪽은 ‘공산무인도’ 31cm x 36cm
현재 최 북의 유작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대략 백여 점 남짓 된다고 하는데, 그의 여러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전북무주군의 ‘최북미술관’’이라고 한다. 최 북의 여러작품은 물론 ‘자신의 눈을 찌르는 광기 어린 성격’, ‘자살 소동을 벌였던 기상’ 등 모든 그의 인물기록을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Jae Hwang (서양화가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