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농사로 인생 이모작

%ea%b9%80%ea%b2%bd%ed%95%842영근 대추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경필씨. 그는 루선밸리 20에이커 땅에서 대추를 키우며 인생 이모작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루선밸리 마리아 대추농장 김경필씨]

모하비 사막의 남쪽, 크고 작은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분지에 100스퀘어 마일의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LA에서 동북쪽으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루선밸리. GPS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마리아 대추농장 (Mary’s Jujube Farm)’이라는 작은 문패가 눈에 들어온다.

20에이커 대추농장을 운영하는 김경필(67)씨. 3년 차 초보 농부다. 중학교 때 너서리하는 친구집을 놀러 다니면서 막연히 동경했던 그 꿈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절학무우(絶學無憂)’라고 쓴 액자가 눈에 띈다. 노자에 나오는 글귀로 보통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라고 해석하지만, 그는 “학문의 절대 경지에 오르면 근심이 없다”라고 다른 해석법을 선택했다. 그가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을 때 부친의 친구가 기념으로 써 준 휘호다. 체구는 작지만 강단있게 일을 추진하는 그의 단면을 표현한 듯싶다.

2014년 11월 그는 루선밸리로 겁없이 이사왔다. 7년생 600주, 3년생 200주의 대추가 심어진, 집이 딸린 땅을 29만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그리고 작년에 3만8000파운드의 대추를 수확했다. 대추 한 나무 당 평균 50파운드를 땄으니 첫 수확치고는 잘한 셈이다.

“7년생은 더 달리고, 3년생은 덜 달렸습니다. 대추가 15년정도 되면 최대로 생산이 된다고 하니 더 공들여 키워야 합니다. 아직 농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꿈을 가지고 노력할 뿐입니다.”

54세에 이민을 왔으니 이민 13년 차. 두 딸을 유학시키다가 가족끼리 떨어져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짐을 꾸려서 뒤늦게 이민길에 올랐다. 이민 경력은 짧으나 걸어온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오자 마자 LA 한인타운에 있는 ‘너랑나랑’ 분식집을 구입했다.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배달하며 3년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제법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몸이 약한 아내의 허리가 안좋아져 더 이상 비즈니스를 할 수 없게 됐다. 좀 쉬운 일을 찾아서 시작한 것이 체크 캐싱업이었다. 남보기에 쉬워서 시작은 했지만 종업원을 써야 할 상황이 오자 그 비즈니스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다른 업종을 찾아 새로 시작한 비즈니스가 스시 집이다. 6가 길 채프만 몰에 있는 ‘교토스시’를 2007년에 구입했다.

첫 해는 장사가 잘 되는가 싶더니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자 열심히 일한 것과는 반대로 매상은 급속히 줄었다. 당시 렌트비가 월 1만2000달러였으니 어지간히 벌어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7년 동안 고생을 하고 2013년 100만달러를 손해보고 스시집을 접었다. “자기가 모르는 일은 너무 크게 벌리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골랐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 살았으니 이제는 가꾸는 대로 보답해주는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신문 광고에 나온 매물을 보고 무작정 루선밸리를 찾았다.

곧바로 컨트리 클럽 파크에 있던 살던 집을 처분했다. 집 값이 올라서 새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땅 값이 비싸지 않느냐는 주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언제 묘목 심어서 대추를 따랴 싶어서 손해본 듯 생각하고 나무가 심어져 있는 땅을 구입했다. 이사 온 다음 해부터 수확을 했으니 그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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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과천 시의회 부의장을 하던 당시의 모습.

분식집 주인, 체크 캐싱업주, 스시집 사장을 거쳐 지금은 손이 거친 농부로 삶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화려했다.

75년 서울 법대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개발금융에 입사했다. IBRD 차관을 기업에게 빌려주는 일이었다. “첫 출근 날 양복값을 주더군요. 당시에 직원들을 택시로 출근시켜 줄 정도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후 금융권을 옮겨 다니는 사이 과천시 시의원, 시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소각장 문제로 시와 대립이 있은 후 시장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금융권 원로로 존경받는 윤병철 전 한국투자금융 사장이 당시 한국개발금융의 영업부장이었습니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고 한 그의 말이 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상일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그 말뜻은 힘든 상황에서 그가 삶을 체념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민자의 삶이 힘들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남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게 장점입니다. 돈도 벌어 봤고 명예도 가져 봤지만 영육이 강건한 것이 가장 좋은 듯싶습니다. 한국에 산다면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법대 동기로 한국에서 변호사, 목사 등을 하는 친구가 있지만 자신이 제일 마음 편하게 사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서울대 동기로 경제학과를 나온 육증훈 전 새한은행장이 있지만 함께 골프치는 것보다 농사일이 더 재미있다며 마음 편하기로는 자신이 최고일 것이라고 내심 자랑했다.

지난 달 그의 대추농장은 ‘오개닉’ 인증을 받았다. 그동안 커뮤니티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조합원 중에서는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 농사를 지으면서 30파운드의 불필요한 살이 빠지고 인증서를 손에 쥐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거름 줄 때, 가지치기를 할 때 인부를 고용합니다. 한 두 달이면 끝납니다. 나머지 기간에는 아내와 함께 슬슬 일합니다.” 농사가 힘들기 보다는 새들과의 전쟁이 어렵다.

대추에 붉은 색이 돌기 시작하면 새들이 쪼기 시작한다. 10~15%는 새가 먹는다.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맛이 든 대추만 골라서 쪼아 먹는다. 상품가치가 없는 작은 대추를 합하면 30%는 손실이 난다. 그러나 대추는 생대추 외에도 마른 대추, 대추 슬라이스 등으로 팔 수 있다. 게다가 루선밸리 왕대추는 크고 달아서 판로에는 문제가 없다.

대추가 물을 많이 안먹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과일이 여무는 6월~9월까지 4개월간은 물주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하수가 있으니 물 걱정은 없다. 월 평균 400달러의 전기세를 낮추기 위해 최근에 태양열 패널 39개를 설치했다. 이 정도면 농장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12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농장일 프로세싱을 개선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의 인생 이모작 플랜은 꿈으로 가득차 있다. “아직 빈 땅으로 남아있는 10에이커에 대추를 400주 더 심어서 총 1200주를 키울겁니다. 대추로 단기적 수입을 충당하고, 땅 한쪽에 너서리를 운영하여 장기적 수입을 올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명상센터나 노인재활센터를 열어 사람을 돕는데 기여할 겁니다.” 서쪽 흙산이 바람막이 구실을 하여 농장 한쪽 터에 조용한 명상센터를 설립하면 제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인생 100세 시대가 아니라 인생 120세 시대입니다. 성경의 아브라함처럼 건강하게 오래 살 작정입니다. 루선밸리는 습기가 없어 노인들이 살기에 적당합니다. 건강하게 살면서 꿈을 하나씩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을 세워서 내가 죽더라도 계속적으로 다른사람들이 혜택을 받도록 할 예정입니다.”

높은 이상은 하늘을 향해 있고 그의 발은 루선밸리 사막 땅을 딛고 단단히 서 있다. 22일부터 열리는 LA 한인축제에 부스를 얻어서 ‘루선밸리 마리아 대추농장, 왕꿀대추’라는 이름으로 대추를 판매한다. 그 다음 주 10월 2일에는 ‘루선밸리 대추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 하이데저트 대추 영농조합의 총무이사로 활동 중이다. 두 가지 축제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첫 출하라서 기대가 됩니다. 루선밸리 꿀대추 맛보러 많이들 오세요.” 문의: (213)604-6717